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랑스 왕국 (문단 편집) == 국력 == 그 당시 웬만한 [[유럽]]의 [[강대국]] 2개 이상을 합친것을 넘는 [[인구]]를 가졌다. 프랑스가 대부분의 [[영토]]를 확립한 16세기에 프랑스의 인구는 15,000,000명에 달했고 [[17세기]]에는 [[오스만 제국]]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국가였으며[* [[1643년]] 기준 오스만 제국의 인구는 2,800만명, 프랑스의 인구는 1,900만명이었다.] [[1755년]]에는 인구 2,500만명으로 오스만 제국을 제치고 유럽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국가가 되었다.[* 그 당시 오스만 제국은 2,500만명이었으나 프랑스보다 몇십만명 더 적었으며, [[러시아 제국]]은 1,900만명이었다.] [[1750년대]]부터 [[러시아 제국]]이 급격하게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프랑스도 인구가 같이 급격하게 늘어났기 때문에 계속 1위를 유지했다. 결국 러시아가 프랑스의 인구를 완전히 추월한건 [[1814년]]부터였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프랑스 최전성기였던 [[프랑스 제1제국]]이 거의 몰락한 해였다.] [[https://youtu.be/UY9P0QSxlnI|#]] 그외 주요 경쟁국들인 [[영국]], [[스페인]], [[합스부르크 제국|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보다는 2~3배, 나머지 국가들에 비해서는 몇 배는 되는 인구였다. 수도였던 [[파리(프랑스)|파리]]는 [[1600년]]에는 220,000명이었고 [[1685년]]에는 510,000명이나 되어 [[런던]] 다음으로 [[유럽]]에서 인구가 많았고, [[마르세유]]와 [[리옹]] 같은 도시들도 [[무역]] 및 금융업의 중심지로 번성해나갔다. 그러다 보니 프랑스와 비슷하게 한 때는 유럽의 강대국이었으나 이후 [[제후국]]들로 분열된 [[신성 로마 제국]][* 1617년 당시 신성 로마 제국의 인구는 1,900만명이고 프랑스 왕국의 인구는 1,700만명이다. 그리고 [[30년 전쟁]]으로 신성 로마 제국 인구의 3분의 1이 날아갔다.(...)]의 제위를 반독점세습한 [[합스부르크 가문]]이 가장 경계하는 대상이었다. 그리고 결국 19세기에 나폴레옹은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들을 프랑스 세력권으로 끌어들였고, 결국 1804년 [[프란츠 2세]]는 느슨한 [[동군연합]]으로 묶여있던 [[합스부르크 제국|합스부르크 가문의 세습지]]를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전환하여 나폴레옹에 대항했다.[* 결국 영방국가들이 대부분 탈퇴해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 대공국]]과 [[보헤미아 왕국]], [[호엔촐레른 가문]]의 [[프로이센 왕국]]만 남은 신성 로마 제국은 2년 뒤인 1806년 해체되었다.] 이렇듯 언제든지 제국을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라였지만 제국이라 스스로를 칭하지는 않았다. 물론 중세부터 언제나 유럽에서 손꼽히는 강대국이었던 건 틀림없다. 당장 프랑스 왕국의 궁전인 [[베르사유 궁전]]만 봐도 당시 황제국의 궁전인 신성 로마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궁전보다 더 크고 화려하다.[* 사실 국왕이 강대국 수장으로서 격이 낮은 칭호라는 오해는, 동아시아의 조공-책봉 관계를 유럽에 대입해서 나온 잘못된 오해이다. 처음부터 국왕 위의 존재란 개념에서 출발한 중국의 황제(皇帝)와 달리, 로마의 황제(Augustus) 개념은 공화국인 로마에서 왕(Rex) 노릇을 해먹으려는 꼼수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따라서 유럽에서 왕(Rex)이라는 단어의 어감은 역사 내내 자주국의 수장으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실제로 동로마인들은 라틴어로 황제(Augustus)인 자국 수장을 헬라스어로는 그냥 [[바실레우스|왕(Basileus)]]라 불렀다.(다만 11세기 이후부터는 [[아우토크라토르]]라는 어휘를 도입해 다른 나라의 왕들과 차별화를 뒀다.) 분명 중세 프랑스인들도 '로마 황제'라는 말의 특별한 어감은 인정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국 국왕을 봉신 따위로 본 건 아니고, '내왕외제' 따위의 지리적으로도 무관한 동아시아적 개념으로 사고한 것도 아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이러한 강력한 [[국력]]을 기반으로 나중에 [[나폴레옹]] 시대에 가면 진짜로 [[프랑스 제1제국|제국을 선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